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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자교육 · 제4과

문화와 원칙

우리는 디오입니다. ‘세상 모든 크리스천이 지상명령을 깨닫고 준행하게 한다’라는 하나님 나라의 핵심 사명을 위해 모였습니다.

지금 시대는 교회다움을 잃고, 대형 교회라는 목표와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기도와 말씀의 문턱과 평균을 낮추고 또 낮추었습니다. 영으로 사는 삶이 아닌 육으로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 되니 직분은 과시가 되었고, 봉사는 숙제가 되었으며, 교제는 외로움을 채우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기도와 말씀은 아무런 힘이 없는 형식이 된 시대입니다.

우리는 기도, 말씀, 교회의 힘을 진심으로 믿는 공동체입니다. 1시간의 방언 기도, 3시간의 말씀 교육, 3년 반의 성경 66권 공부,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공동체의 삶 — 어느새 이것은 세상 사람들에게도, 크리스천들에게도 특별한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장 위대한 명령이자 언약인 지상명령이 교회와 신앙생활의 본질임을 믿기에 타협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행복한 시간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질을 추구하는 크리스천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오직 말씀과 기도만으로도 초등학생부터 목사님까지 인생이 변화하는 데 충분하다고 믿는 사람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복이자 지혜라고 말하는 사람들, 기독교가 내 삶의 도구가 아닌 내 인생의 목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길 원합니다.

만약 편리한 신앙생활, 부자가 되고 장수하는 복, 나의 소원 성취 — 이러한 것들을 위해 교회를 다니시는 분들께는 다른 교회를 알아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우리와 함께하는 긴 기도와 말씀의 시간, 거룩에 대한 갈망이 꽤 불편하실 테니까요.

이 문서는 우리의 문화를 알려 드리고 하나 되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문화란 교회가 매 순간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이자 하나님 안에서 생존하기 위한 방식입니다. 그렇기에 디오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함께하는 데 중요한 일입니다.

DIO의 문화

제자도 정신

우리는 생생히 목격하였습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장년, 목사와 선교사 — 나이와 직업을 초월하여 기도와 말씀만으로 인생이 빛으로 변하는 기적을 말입니다. 2,000년이 지나도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 정답이었음을 분명하게 경험하였고, 놀랍게도 우리는 그 변화와 기적을 매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지상명령은 온전한 제자가 되는 과정이자 다른 제자를 만들어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문화를 ‘제자도 정신’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제자는 내가 이전의 삶에서 가지고 있는 사고와 판단을 내려놓음을 이야기합니다. 동시에 그 빈자리를 스승의 것으로 채웁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스승이신 성령님과 동행하고, 말씀을 가감없이 배우고, 깨닫고 삶의 열매(결과)로 만들고자 노력합니다. 이것은 제자라면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생각과 말씀이 부딪칠 때는 제자로서 과감히 이전의 것을 포기하고 우리의 모델이 되신 예수님의 길을 걷기를 하나씩, 하나씩 선택하며 닮아갑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빛나는 인생이 보장된 길입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 약속된 온갖 복이 우리의 것이 되고, 온갖 저주는 우리의 것이 아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상명령하는 제자된 우리에게 ‘세상 끝나는 날까지 너희와 함께하리라’라는 약속을 이행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특별한 선택을 받은 자이자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제자도 정신’ — 이 문화의 특징 중 가장 두드러진 네 가지를 매우 높은 수준으로 지켜 나가고자 합니다.

원칙 1

사랑

사랑은 디오의 첫 번째 원칙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모인 공동체입니다. 거저 받은 은혜 거저 주라는 말씀을 따라 우리는 사랑하기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의 대표적인 언어는 지상명령입니다. 각자 사랑에 대한 정의와 방법이 있지만, 그 어떤 것도 하나님과의 동행을 돕는 것보다 뛰어난 사랑은 없습니다. 이 동행이 사랑의 출발이자 도착지여야 합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편 16편 11절

그렇기에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사랑의 지침들을 기억해주세요.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기준으로 맞추고 배려해주세요.

(고전 8:9, 12–13)

9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2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2) 내 사랑의 언어가 타인에게는 불편함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해주세요. 되도록 상대방이 원하는 사랑의 언어를 맞춰주세요.

(고전 9:20, 22)

20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2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3) 틀림이 아닌 다름입니다. 관점과 사고와 언어가 다른 것은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다르게 만드신 ‘지체’임을 이해해주세요.

(고전 12:18–20)

18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20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4) 자원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맡기신 은사와 헌금으로 사랑해주세요.

은사를 활용한 봉사와 헌금은 강요와 부담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되기에, 리더가 일방적으로 시키지 않아야 합니다. 자원하지 않는다면 사랑이 더 쌓여야 하는 기간임을 알아주세요.

(벧전 4:10)

10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고후 9:7)

7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원칙 2

질서

질서는 디오의 두 번째 원칙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 중 하나는 가장 알맞은 교회와 동역자를 만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사랑과 하나님의 지혜를 신뢰하는 방법은 그 교회와 동역자 간의 질서를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리더의 이야기의 합리와 비합리, 존경과 부족함에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곳에 보내신 하나님이 나의 생각보다 크심을 믿고 따르는 것이 지혜의 근본임을 알기에, 우리는 질서를 선택합니다.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고린도전서 14장 40절

그렇기에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질서의 지침들을 기억해주세요.

1) 세워진 권위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으로 믿고, 내 생각과 판단보다 앞서 순종해주세요.

(롬 13:1)

1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잠 3:5)

5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2) 담임목사님께 구할 것은 ‘하나님을 향한 충성’입니다. 그 외의 부족한 부분은 비판 대신 교회의 다양한 은사로 어떻게 보완할지를 함께 고민해주세요. 리더는 보호의 대상임을 잊지 말아주세요.

(고전 4:1–2)

1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딤전 5:19)

19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3) 리더는 믿음을 주관하는 자가 아니라 돕는 자, 곧 동역자(쉬네르고스, συνεργός — ‘함께 일하는 자’)임을 기억해주세요. 섬기기 위해 그 자리에 세우셨습니다.

(고후 1:24)

24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4) 각자 위임받은 역할과 은사에 최선을 다해주세요. 그 자리는 하나님께서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골 4:17)

17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벧전 4:10)

10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원칙 3

겸손함

겸손은 디오의 세 번째 원칙입니다.

사랑과 질서는 겸손 위에서만 지켜집니다. 겸손을 잃는 순간 사랑은 자기주장이 되고, 질서는 무너집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겸손은 예수님을 닮는 길이자 높임을 받는 지혜이고, 우리를 존귀하게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잠언 15장 33절

그렇기에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겸손의 지침들을 기억해주세요.

1) 지체의 역할 안에서는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주세요.

일방적으로 낮추기만 하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리더를 통해 세워진 그 자리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은사이자 강점의 자리임을 고백하는 것은, 내 판단보다 은사를 주신 성령님과 리더를 세워주신 하나님의 판단이 맞다고 고백하는 겸손입니다. 내가 맡은 자리에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발언하고, 개선하며 일해야 합니다.

(롬 12:6–8)

6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딤후 1:6)

6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2) 지체의 역할 밖을 넘어 이야기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탁월한 의견과 허점에 대한 발견이 있어도, 먼저 질문받지 않은 이상 침묵과 순종으로 존중해주세요. 우리는 부분적인 지체이며 부분적인 은사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절대 다른 지체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고, 그 관점과 지혜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반대로 모든 은사와 역할과 강점을 내가 알고 있다는 생각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와도 어긋나는 생각이며, 인류 중 누구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 교만은 반드시 오판을 불러일으키기에 패망의 선봉이 됩니다. 하나님은 나의 강점과 약점을 가장 잘 아십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가장 최고의 교회와 리더와 동역자를 붙여주십니다.

그렇기에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은 단순히 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를 고백하는 태도입니다. 주어진 것 안에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존귀를 부르는 겸손함이자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알맞은 직분과 역할과 은사를 주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잠 16:18)

18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고전 13:9)

9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고전 12:21)

21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빌 2:3)

3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3) 판단 대신 질문합니다.

겸손을 취하는 가장 탁월한 도구는 질문입니다. 이미 판단이 되었다고 느껴도 그 판단이 맞는지, 혹은 다른 의도가 있는지, 내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전략이 있는지 질문합니다. 이 겸손은 높은 자리로 이끄는 탁월한 겸손입니다.

(잠 18:13)

13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

(약 1:19)

19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원칙 4

단순함

단순함은 디오의 네 번째 원칙입니다.

단순함이란 본질만 남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효과 있는 하나를 위해 99가지를 포기하는 용기입니다.

일곱 교회 중 다섯 교회가 그렇듯, 교회가 무너지는 것은 본질이 아닌 것들이 쌓일 때입니다. 제자교육 시간 가운데 드라마 시청 30분이 있었다면, 콘퍼런스 가운데 레크리에이션과 인문학의 시간들이 있었다면 — 그 시간은 더 편안했을지 몰라도, 우리가 매주 목격하는 변화와 기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를 변화시킨 것은 오직 기도와 말씀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교회가 아니라 지상명령만 남기는 교회를 선택합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고린도전서 10장 23–24절

그렇기에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단순함의 지침들을 기억해주세요.

1) 더하는 일은 신중하게 — 우리의 사명과 비전, 문화에 기여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일인지 검토해주세요.

  1. a.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라도 기여하지 않는다면 과감히 포기합니다.

  2. b. ‘반드시 필요한 일’이란 하면 좋은 일,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안 하면 문제가 생기는 일을 이야기합니다.

(눅 14:28)

28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 반대로 덜어내는 일은 적극적으로 해주세요.

  1. a.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라면 적극적으로 시도합니다. 먼저 덜어내 보고 문제가 있다면 복구하고, 없다면 덜어낸 채로 진행합니다.

  2. b. 덜어낼수록 지상명령의 문화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주세요.

(요 15:2)

2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우리는 단순함을 위해 다음 순서로 일합니다.

  1. a. 일의 본질을 먼저 찾습니다. “왜 이 일을 하는가?”, “이 일을 통해 본질적으로 무엇을 얻기 원하는가?”를 질문합니다.

    예) 점심 식사 봉사 → 식사를 하지 않으면 제자교육에 집중할 수 없음 + 식사 교제를 통해 교회가 하나 됨,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룰 수 있음 → 해야 함
    예) 통기타 악기 봉사 → 찬양을 더 아름답게 올려 드림으로 예배 집중을 도움 → 보컬과 피아노가 있는 상황에서는 ‘하면 좋은 일’이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아님 → 포기
  2. b. 이 일의 본질을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목표’를 정합니다.

    예) 점심 식사 봉사 → 공복을 채우는 것,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교제에 충실한 시간 만들기 등의 후보 중 → 지상명령에 방해받지 않을 정도로 공복을 채우는 ‘만족한 식사’
  3. c. 그 목표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과 ‘하면 좋은 일’을 구분하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만 남깁니다.

    예) 만족한 식사를 위해 밥·국·반찬 4가지를 담당자가 요리 → 꼭 4가지여야 할까? 3가지로 줄여도 만족도가 유지되는가 → 반찬은 반찬가게에 위임이 가능한가 → 성도님들 중 자원하여 반찬을 섬길 분이 있는가 → 고정 반찬(김치)을 두는 것은? → 밥 짓기 매뉴얼을 만들어 돌아가면서 한다 → 햇반을 검토한다 → 근처 한식 뷔페는 본질을 해치는가? 등
(눅 10:41–42)

41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이 방법으로 교회의 봉사를 최대한 줄여 봉사로 지치는 일을 방지하고, 동시에 교회의 본질을 놓치지 않게 합니다.

(출 18:17–18)

17모세의 장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하는 것이 옳지 못하도다 18너와 또 너와 함께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네게 너무 중함이라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문화를 이해하셨다면,
함께 걸어가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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